Daily Woody 에세이 | 2026.06.07 — 용지 동난 투표소, 다시 불붙은 '부정선거'
6월 3일 오후 1시, 서울 송파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동났다. 곧 강남과 광진으로 번졌다. 선거 당일 중앙선관위는 부족 투표소를 14곳이라고 했지만, 숫자는 가만있지 않았다. 5일 브리핑에서 선관위는 용지를 급히 더 보낸 투표소가 전국 67곳, 그 가운데 추가분을 실제로 쓴 곳이 50곳, 잠시라도 투표가 멈춘 곳이 22곳이라고 정정했다. 송파에만 15곳이 몰렸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사고는 처음 알려진 것보다 컸다.
그날 밤의 장면은 더 길게 남았다.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번호를 받은 유권자를 위해 밤 10시까지 문을 열었다. 마감 뒤 ‘부정선거’를 외치는 시민과 보수 유튜버 수백 명이 투표소를 에워쌌다. 이들은 ‘개표 중단’을 요구하며 투표함을 개표소로 옮기려는 선관위를 몸으로 막아섰다. 현장에선 국민의힘 김재섭·김은혜 의원이 중재를 시도했다. 그러나 같은 밤, 당 대표 장동혁은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 선거는 오염됐다’며 개표 중단과 재선거를 요구했다. 이준석도 개표 중지를 외쳤다. 현장의 진화와 지도부의 부채질이 정반대로 갈렸다.
원인은 음모가 아니라 재고였다. 선관위는 폐기 낭비와 ‘남으면 조작한다’는 의심을 줄이려 본투표용지를 선거인 수의 절반만 찍었지만, 높아진 사전투표율을 투표소별로 반영하지 않은 일률 기준이 화근이었다. 송파는 구 전체로는 용지가 4만여 장 남고도 일부 투표소에서 낮부터 동났다. 책임은 빠르게 정리됐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5일 사퇴했고, 허철훈 사무총장과 오민석 서울시선관위원장도 물러났다.
피해는 엉뚱한 곳에 떨어졌다. 잠실7동 투표함 두 개는 봉쇄에 막혀 마감 35시간 만에야 반출됐고, 개표소로 옮겨간 시위에 선관위 직원 20여 명이 하루 넘게 갇혔다. 바로 옆 어린이집에는 사흘간 소음이 쏟아졌다. 일부 참가자는 화장실을 쓰겠다며 무단 침입을 시도하고 욕설을 퍼부었고, 교사들은 낮잠 자던 아이들을 건물 안쪽으로 피신시켜야 했다. 선거 사무에 차출됐을 뿐인 일선 공무원들마저 부정선거 의혹의 표적이 됐다. 음모론의 비용은 이렇게 가장 약한 자리에서 먼저 치러진다.
하필 오세훈 후보가 강세였던 동남권에서 용지가 떨어지자 ‘표를 줄이려는 손’이라는 의심에 불이 붙었고, 불은 위에서 더 키웠다. 장동혁 대표는 결과가 나오기 전엔 ‘무효·재선거’를 외쳤지만, 오세훈이 이기자 그 요구를 거뒀다. 불복의 수위가 표의 향방을 따라 움직인 것이다. 민주당도 선관위 책임을 지렛대 삼아 국정조사를 밀어붙인다. 선거의 신뢰는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셈했느냐에서 자란다. 번호표를 쥔 채 돌아선 유권자도, 음모의 표적이 된 공무원도 어느 진영의 셈법에 없다. 다음에 줄을 설 사람이 ‘내 한 표가 끝까지 세어진다’고 믿을 수 있는가. 위원장 한 사람의 사퇴로는 닫히지 않는 질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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