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에 선 사람, 사진을 찍은 사람 — Woody Magazine, 2026년 5월 29일
정상에 선 사람, 사진을 찍은 사람
오늘 에베레스트 초등 73주년 — 가장 유명한 정상 사진에 힐러리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30분, 에베레스트 정상. 산소 장비로 온몸을 감싼 한 사내가 얼음도끼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도끼 자루에 묶인 네팔·영국·인도·유엔 네 개의 깃발이 바람에 곧게 펴졌고, 마스크와 고글에 가려 사내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등반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한 컷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으로 부르는 에드먼드 힐러리는, 이 사진 어디에도 없다.
이유는 의외로 싱겁다. 그 순간 카메라를 든 쪽이 힐러리였기 때문이다. 정상에 함께 선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는 카메라를 다룰 줄 몰랐다. 힐러리는 텐징을 찍어줬지만, 정작 자기 사진을 부탁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인류가 지구 꼭대기를 처음 밟은 순간의 기록은 '정복자'가 빠진 채로 남았다. 한 산악 사진가는 훗날 그 사진을 두고 "어디서 찍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의 아무렇게나 누른 스냅"이라고 했다. 등반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진 한 장이, 실은 지친 사람이 대충 누른 것이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남는다. 어떻게 사진에 찍힌 사람은 조연이 되고, 사진을 찍은 사람은 주인공이 되었을까.
먼저 사진 속 인물부터 보자. 텐징 노르가이가 태어난 곳은 지금도 분명치 않다. 본인은 네팔 쿰부라 했지만, 티베트 체추라는 기록도 있다. 본명은 남걀 왕디. 십대 때 가난한 고향을 등지고 인도 다르질링으로 달아났고, 열아홉이던 1935년 짐꾼으로 첫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따라나섰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살아 있는 사람 가운데 에베레스트를 가장 많이 오른 남자가 되어 있었다. 1952년 스위스 원정대와 함께 정상 직전 약 250미터까지 닿아 당시 인류 최고 고도 기록을 세운 것도 그였다.
반대편에는 조바심이 난 제국이 있었다. 영국은 북극점을 미국에, 남극점을 노르웨이에 차례로 내준 참이었다. 마지막 남은 '제3의 극점' 에베레스트만은 빼앗길 수 없었다. 1921년 이래 번번이 실패한 끝에 맞은 아홉 번째 도전, 영국이 꺼낸 카드는 둘이었다. 하나는 뉴질랜드에서 벌을 치던 양봉업자 힐러리. 다른 하나는 그 산을 누구보다 잘 아는 셰르파, 텐징이었다.
"여섯 번 올랐다. 일곱 번째엔 실패할 수 없다."
— 텐징 노르가이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산에 발을 딛기도 전, 카트만두에서 이미 드러났다. 셰르파들의 우두머리였던 텐징에게 영국 대사관은 침대 하나를 내줬다. 나머지 열아홉 명의 셰르파는 대사관 차고 바닥에서 자야 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대사관 담벼락에 자기들의 의견을 분명히 남겼다. 소변으로. 기록에 남은, 셰르파가 서양인에게 보인 최초의 항의였다.
그렇게 출발한 원정대가 두 달 넘게 산을 기어올랐고, 5월 29일 정상에 닿은 건 텐징과 힐러리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꼭대기에서 15분을 머물렀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텐징은 산의 신들에게 바칠 과자와 사탕을 눈 속에 묻었다. 힐러리는 원정대장이 맡긴 작은 십자가를 같은 눈 속에 묻었다. 8,848미터 위에서 두 신앙이 나란히, 각자의 방식으로 인사를 올린 셈이다. 내려오던 힐러리가 동료 조지 로를 처음 만나 던진 첫마디는 이랬다. "음, 조지, 우리가 그놈을 해치웠어."
여기까지가 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야기가 뒤집히는 건 두 사람이 산을 내려온 뒤부터다.
소식은 본인들보다 먼저 런던에 닿았다. 1953년 6월 2일, 하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아침이었다. 영국은 이 등정을 새 여왕에게 바쳐진 대관식 선물처럼 받아들였다. 그리고 영예를 나눠줬다. 힐러리와 원정대장 존 헌트에게는 기사 작위가 돌아갔다. 정작 살아 있는 가장 노련한 에베레스트 등반가였던 텐징에게 돌아간 것은 조지 훈장이었다. 작위가 아니라, 훈장. 이유는 단순하고, 또 서늘하다. 그의 여권이 영국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곧 더 집요한 질문에 매달렸다. 둘 중 누가 먼저 정상을 밟았느냐는 것이었다. 인도와 네팔의 언론은 텐징이 먼저였기를 바랐다. 식민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절,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였다. 영국 쪽은 불편해했다. 양쪽 어디에도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힐러리와 텐징과 헌트 세 사람은 한 가지를 합의했다. 누가 먼저였는지 영원히 말하지 않기로. 그날 정상에 실제로 서 있던 두 사람만이, 그 질문 자체를 거부한 셈이다.
이름을 붙이는 일에서도 무게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정상 직전을 가로막는 12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암벽에는 '힐러리 스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텐징의 발도 똑같이 그 바위를 디뎠지만, 바위가 품은 이름은 하나뿐이었다.
그로부터 73년이 지나는 동안, 두 이름의 운명마저 갈렸다.
'힐러리 스텝'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2015년 네팔을 덮친 대지진이 그 바위를 무너뜨렸고, 2017년 정상에 오른 한 영국 산악인이 이를 확인했다. "힐러리 스텝은 더 이상 없다."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의 이름을 단 바위는, 그렇게 산에서 떨어져 나갔다.
텐징의 이름은 다른 곳에 남았다. 그는 정상에 오른 뒤 다시는 에베레스트에 가지 않았다. 대신 1954년 다르질링에 히말라야등반학교를 세우고, 그곳에서 수십 년간 네팔과 인도의 산악인들을 길러냈다. 학교는 지금도 그의 이름과 함께 서 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1953년 그 원정대의 마지막 생존자가 세상을 떠났다.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고소 캠프까지 짐을 져 나른 셰르파, 칸차. 아흔둘이었다. 이제 그날의 에베레스트를 제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사진 한 장이다. 얼음도끼를 든 사내와, 그 뒤로 펼쳐진 텅 빈 하늘. 그 사내의 이름은 텐징 노르가이다. 그리고 그는 73년이 지난 지금도, 대개 두 번째로 불린다.
에베레스트 초등의 가장 유명한 사진 속 인물은 '정복자' 힐러리가 아니라, 그를 일곱 번째 도전 끝에 정상에 데려간 셰르파 텐징이다.
- YAMATOMO Magazine — The First Ascent of Everest (정상 사진 경위)
- Wikipedia — 1953 British Mount Everest Expedition (대사관 일화, 원정대원 조지 밴드 증언 인용)
- National Geographic — 50 Years on Everest ("knocked the bastard off", 누가 먼저)
- Encyclopaedia Britannica — Tenzing Norgay (15분, 등반학교)
- History.com — Hillary and Tenzing Reach Everest Summit (작위·훈장 차이)
- BBC News — Mount Everest's famous Hillary Step destroyed (2017)
- Wikipedia / Malay Mail — Kancha Sherpa, 1953 원정 마지막 생존자 별세 (20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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