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Woody 에세이 | 2026.05.24 — 달력 위의 무신경, 스타벅스가 밟은 기억

Daily Wo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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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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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위의 무신경 — 스타벅스가 밟은 것은 날짜가 아니라 기억이었다

5월 18일 아침, 스타벅스코리아 앱에 배너 하나가 올라왔다. 탱크 텀블러 할인 행사. 이름은 '탱크데이'. 날짜 '5/18'이 크게 박혔고, 그 옆에 '책상에 탁!'이라는 카피가 붙었다. 비판이 쏟아지자 스타벅스는 문구를 '작업중 딱'으로 슬그머니 고쳤다. 사과보다 증거 인멸이 먼저였다. 세 시간 뒤 게시물을 전면 삭제했지만, 스크린샷은 이미 퍼진 뒤였다.

왜 이 배너 하나가 나라를 뒤흔들었는가. 1980년 5월 18일, 전두환 신군부는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광주 시민의 민주화 항쟁을 짓밟았다. 열흘간의 유혈 진압으로 수백 명이 희생됐다. 한국에서 '탱크'와 '5·18'이 같은 화면에 놓이는 순간, 그것은 텀블러가 아니라 장갑차가 된다. '책상에 탁' 역시 마찬가지다.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 끝에 숨졌을 때, 당시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그 문장은 한국 사회에서 국가폭력의 거짓말을 상징하는 관용구로 남아 있다. 두 표현이 같은 날, 같은 페이지에 나란히 실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일 엑스(X)에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행태에 분노한다"고 적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이튿날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담당 임원을 해임했다. 미국 본사인 스타벅스 글로벌도 로이터 통신을 통해 "광주 시민과 비극의 피해자, 고객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성명을 냈다. 대표 경질까지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이마트 주가는 하루 만에 5.5% 빠졌다. 텀블러 카피 한 줄이 시가총액을 깎은 것이다.

그런데 불은 거기서 꺼지지 않았다. 누리꾼들이 스타벅스의 과거 이벤트 기록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한 304명이 희생됐다. 그로부터 정확히 12년 뒤인 2026년 4월 16일, 스타벅스는 '미니 탱크데이'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진행했다. 당시에는 '탱크'와 세월호 사이에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어 조용히 지나갔지만, 5·18 논란이 터진 뒤 소급 조명을 받았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5월 23일, 대통령이 2024년 4월 16일에 출시된 '사이렌 클래식 머그'까지 소환했다.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서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해 배를 난파시키는 존재다. 동시에 스타벅스의 로고이기도 하다. 배를 가라앉히는 존재의 이름을 한국 최악의 해양 참사 추모일에 내건 셈이었다. 대통령은 "인두겁을 쓰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적었다.

개별적으로 보면 각각은 우연일 수 있다. 탱크는 미국 본사가 붙인 텀블러 제품명이고, 사이렌은 1971년부터 쓰인 브랜드 심볼이다. 그러나 비즈한국 취재에 따르면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해 한 해 동안 222건의 프로모션을 돌렸다. 이틀에 한 번꼴이다. 그 속도 속에서 개별 문구와 날짜의 사회적 맥락을 점검하는 검수는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날짜로 불리는 비극이 유독 많다. 4·3, 4·16, 4·19, 5·18, 6·25. 그 숫자는 고유명사처럼 작동하고, 유가족과 시민이 수십 년에 걸쳐 쟁취한 공적 기억이다. 기업의 마케팅 캘린더와 시민의 기억 캘린더가 한 번도 대조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인터넷에는 '탈벅(脫-bucks)'이라는 신조어가 퍼졌다. 스타벅스를 완전히 끊겠다는 뜻이다. SNS에는 머그컵을 깨뜨린 사진이 올라오고, 적립 카드와 쿠폰 환불 인증이 이어졌다. 한국관광공사와 선관위가 경품에서 스타벅스 쿠폰을 빼면서 소비자 불매는 공공 부문의 거리두기로 확산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이 정용진 회장 고발 사건을 직접 맡아 광주에서 접수된 고발까지 병합했다. 한편으로 직원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는 "몇천 명이 피해를 보는데 고의가 아니라고 끝인가"라는 성토가 올라왔다. 논란을 만든 것은 본사였지만, 매장에서 욕을 듣는 것은 파트너(매장 직원)들이었다.

Reuters, BBC, 알자지라가 이 사건을 보도했다. Inside Retail Asia는 "제도적 실패의 교과서"라고 적었다. 텀블러 하나를 더 팔기 위해 만든 배너가 대통령의 분노, CEO 해임, 주가 급락, 경찰 수사, 글로벌 뉴스를 거쳐 한국 사회의 기억 정치 한가운데까지 도달했다. 이 논란이 어디에서 멈출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한국에서 달력의 빈칸은 비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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